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241

우리가 좋아요 연분홍빛 봄날이 다가와 화하게 핀 벚꽃잎이 조용하던 시냇가를 떠들썩하게 만들 때에 그 시냇가 옆에 무릎을 모아 앉은 우리는 기분 좋은 낯설음 한 가운데에서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네요 딱히 웃을 일이 없어도 미소를 짓게 되고 딱히 웃긴 일이 없어도 웃음소리를 내게 되고 미소들이 모여 저 시냇물에 물보라가 일어나요 웃음들이 뭉쳐 저 시냇물에 물바람을 일으킨다고요 2022. 4. 9.
도망가자는 말이 그리 쉬운가요 '나와 도망가자 저 멀리, 멀리로 도망가자 꿈까지 비집고 들어오려는 날카롭고 아픈 현실을 두고 괜히 아릿하게 마음을 찔러오는 뾰족하고 슬픈 사람을 두고 나와 도망가자 저 멀리, 멀리로 도망가자' 그대는 그리 말씀하셨지요 도망가자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가버리자고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던 그대로서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동생으로 태어난 저는 그대의 말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나를 두고 홀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그 뒷모습을 보며 저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누더기 같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주름투성이가 된 나에게 오늘같이 매끈한 그대가 다가와 이마를 쓰다듬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 4. 9.
그런 밤 양껏 공기를 모아 후 소리와 함께 비워내어도 속에 엉겨 붙은 묵직한 덩어리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를 채워도 허하니 이는 배곯음이 아니요 배를 비워도 체한 듯 꽉 막혔으니 허기짐 또한 아니다 울컥 치미는 구토감을 견디며 보내는 일과는 주객이 전도되고 매일이 우악스럽게 덮여오는 어둠과 차오른 눈물의 교차 차라리 눈 뜨지 않으니만 못하게 한다 늘어지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엉클어진 덩어리를 차근히 매만지면 그 끝이 스멀스멀 움직여 외로움에 닿는다 2022. 4. 8.
시가 되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음의 반복이 힘에 부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시를 읽습니다 보라카이의 지는 노을을 상상하며 밝게 어두운 지금을 지워낼 수 있습니다 줄리엣의 슬픔을 말하며 지구 반대쪽의 검은 머리는 눈물 흘릴 수 있습니다 얼어버린 하천 떠나버린 오리의 꽁지깃을 손에 쥔 채 이끼 끼지 못하는 바위에 걸터앉아 혼자만의 사랑에 잠겼다가 홀로 이별의 슬픔까지 맞이합니다 풍성한 갈대밭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푸른 눈 닿는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2022.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