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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작가155

화분 속 할머니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할머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조화에는 물을 줄 필요가 없다 말했지만 할머니는 늘 물을 주었다 생명이 없는 것도 화분에 갇힌 것도 억울한데 물까지 안 주면 화가 나지 않겠니 할머니의 먹먹한 대답에는 홀로 남겨진 외로움이 묻어있었다 남편은 하늘로 날아가고 아들은 땅에 묻히고 딸은 멀리로 시집가고 가끔 찾아오는 손주의 낡은 선물만이 당신에겐 유일하게 남은 기쁨이었을까 할머니 생화를 가져다드릴까요 손주야 괜한 돈 쓰지 말아라 대신 이렇게 가끔이라도 찾아와다오 그날따라 화분 속 조화는 할머니의 눈시울처럼 유난히 어린 물기로 반짝였고 아파트에 갇힌 할머니는 유난히 생기를 잃었다 2023. 5. 12.
그대의 사소함에 대하여 먹구름의 뒤에는 그대가 있겠죠 내 젖은 머리칼을 말릴 수건과 새 옷을 손에 들고 이 비가 걷히기만을 기다릴 거예요 이 고통의 끝에는 그대가 기다리겠죠 내 상처를 닦아주고 치료해줄 약들을 손에 들고 내게 아픔을 주는 것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거예요 그러니 나는 한껏 비를 맞아도 기뻐요 있는 힘껏 아파도 괜찮아요 그대가 있잖아요 아무리 비를 맞아도 닦아줄, 아무리 아파도 상처를 치료해줄, 그대가 있잖아요 만약 이 먹구름의 뒤에 그대가 없다면 내 젖은 머리칼을 말릴 수건과 새 옷이 없이 이 비를 혼자 맞는다면 만약 이 고통의 끝에 그대가 없다면 피 흘리는 상처들과 느껴지는 아픔들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비 오는 날이 싫어질 거예요 상처들과 아픈 날이 싫어질 거예요 그대가 없잖아요 아무리 비를 .. 2023. 5. 9.
사랑은 꽃이었다가 고목이 되는 것 사랑을 할 적에 사랑은 꽃처럼 맑게 싹이 돋고 자라나며 피어난다 사랑의 잎은 사랑, 그 자체보다 거대하게 제 모습을 치장한다 그러다, 그러다가 사랑이 끝날 적이면 사랑은 고목처럼 힘없이 균열이 생기고 짙게 부서지다 결국 스러진다 사랑의 결말이란 사랑, 그 존재보다 훨씬 초라하게 남겨짐도 없이 사라진다 너가 그랬고 내가 그랬으며 우리가 그랬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러하며 우리가 그러했다 2023. 4. 25.
시린 꽃잎 저 시린 꽃잎은 당신을 닮아 있군요 흩어져 내릴 것이라면 시리지 않은 온기 가득한 바람에 의하기를 매정히 떠나지 않을 빗물에 의하기를 202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