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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104

도망가려는 가끔 나는 내가 시인인 것이 슬프게 느껴지고는 해 우리의 길고도 찬란했던 아름다운 나날들을 짧은 시로 남길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의 굴곡 있던 사랑과 입체적이었던 아픔들도 그저 글자들의 조합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나니까 그대는 어떻게 지내나요 아프게 지내나요 나처럼, 아프게 지내나요 그대는 어떻게 지내나요 슬프게 지내나요 나처럼, 슬프게 지내나요 행여 어떤 시가 그대의 마음을 울린다면 그 시는 나의 시일 거야 행여 어떤 글이 그대를 슬프게 한다면 그 글은 나의 글일 거야 그렇게나마 남고 싶은 초라한 나일 거예요 2022. 8. 11.
비는 내리고 나는 울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으니까요 가끔 마음이 쑤시듯 아파도 나는 참습니다 슬픔을 잊어버리고 아픔을 지우는 대신 그대를 잃기로 했으니까요 비는 여전히 내리고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내리는 비를 봅니다 비가 올 때마다 왜 나도 따라 슬퍼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비는 내리고 나는 울지 못합니다 울 자격이 없으니까 난도질당한 가슴이 쓰려도 참아야 합니다 슬픔을 잃어버리고 아픔을 까먹는 대신 그대를 잊기로 했으니까요 비가 깨끗이 그치고 나는 공허한 가슴으로 빛나는 해를 봅니다 비는 그쳤는데 왜 나는 아직 슬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22. 8. 10.
검은 잉크가 담긴 잉크병과 그 앞에 앉은 나 펜촉에 잉크를 묻혀 원고지에 쓰곤 하는 나의 작은 외로움 나를 노래한다는 마음으로 가사처럼 적어 내려간 그 모든 원고지 뭉텅이들 그런데도 답답한 이내 마음 해소되지 않아 한참이나 검은 잉크병만을 바라본다 잉크병 속에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잉크처럼 어두운 밤을 잉크병을 바라보며 보내고 있을까 나의 글이 누군가의 시와 누군가의 편지와 누군가의 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시와 누군가에게는 편지와 누군가에게는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가냘프게 죽더라도 나의 글은 남아 누군가들의 밤하늘을 외롭지 않게 빛내주었으면 한다 2022. 8. 9.
나의 낡은 집 머나먼 시골 논과 밭의 사이엔 나의 낡은 집 논을 볼 때는 어렸었고 밭을 볼 때는 자랐었고 낡은 집을 보았을 때에는 어른이 되어있었네 그래서 떠나왔지 논이 싫고 밭이 싫고 낡은 집이 싫고 그 중 하나였던 내가 싫어서 도시의 불빛에 데이고 도시의 소란함에 잠 못 이루던 나 어느 샌가부터는 익숙해져 버린 도시에 적응해버린 나 문득 외로워져 도시에서 번 돈을 들고 찾아간 나의 고향 논은 바싹 메마르고 밭은 전부 썩어버리고 낡은 집은 부서져 버렸네 허망한 마음 한 가운데에 서서 문장을 되뇌이네 나는 단지 행복을 바랐을 뿐인데 나는 단지 행복을 바랐을 뿐인데 2022.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