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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작가79

낙원의 호수 가본 적도 없는 낙원에 가기 위해 낙원이었던 곳을 버리고 떠나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랑을 찾기 위해 사랑했던 것을 버리고 도망간다 먼 훗날 오늘을 떠올릴 때 변명을 할 수 없지는 않다만 다만, 다만. 나중에 지금을 되새길 때 이유를 댈 수 없지는 않다만 다만, 다만. 돌과 부서진 나뭇가지를 모은다 바위와 커다란 나무토막을 모은다 그 무엇의 가치는 언제나 상대적이기에 기침과 가래가 섞여 호수 속으로 스며든다 호수의 물이 폐에 들어찬다 머지않아 머리까지 호수에 잠긴다 더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걸을 수 있는 축복이 내게 따르기를 기도하며 2022. 3. 3.
그럼 돼요 우리의 시간은 아름다웠으니 우리의 마지막도 아름답게 끝맺어졌으면 했는데 우리의 사랑도 아름다웠으니 우리의 작별도 아름답게 남겨졌으면 했는데 애틋한 그림들과 애꿎은 실망은 그대와 나의 거리를 넓히고 또 넓혀서 나는 애타게 웁니다 애달픈 사진들과 애꿎은 추억은 그대와 나의 사이를 벌리고 또 벌려서 나는 슬프게 웁니다 투박한 음악이 흐를 때, 낯선 공간이 미울 때가 되면 나를 떠올려주십시오 그대를 사랑했기에 그대를 황량하게 추억하는 나를, 그런 나를 부디 떠올려주십시오 2022. 3. 2.
봄날 여리고 어려서 언제나 숨고 싶던 나의 어릴 적 모습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커다랗게 만개해있다 봄날이 떠나버리면 빨간 햇볕이 내리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있을까 회색 바람이 불면 사라져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얀 눈이 내리면 얼어붙지 않을 수 있을까 봄날이 떠나버리면 빨간 햇볕이 내리면 회색 바람이 불면 하얀 눈이 내리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져버린 순수함의 마른 꽃잎을 애써 손에 쥐면 나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어버린 어린 나의 색 바랜 꽃잎을 애써 품에 안으면 나는 나를 탓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22.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