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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205

결국 꽃이 되었다가, 시들어버릴 이야기 뾰족한 씨앗도 시간이 지나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땅 밖으로 자라난다면 그 날카롭던 제 모습을 숨기고 보드라운 잎사귀만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 그 지리하고도 쇠잔한 생이여 그 아릿하고도 소멸될 삶이여 그대는 풀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를 맺었다가 저물고 지다가 시들어버리리라 나에게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지만 그대에게도 그것이 과연 슬픔일까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내 멋대로 슬퍼하고 아파한다 첫 모습의 그대를 떠올리며 그대는 동의하지 않는대도 나는 계속 내 멋대로 아파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2022. 12. 18.
거울과 보석 거울을 땅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게 하자 하늘도 제 얼굴을 보고 치장할 수 있도록 나중엔 거울을 뒤집고 땅바닥 보게 하자 땅도 자기 모습을 보고 웃어볼 수 있도록 메마를 바다에 닻을 내리고 기다리자 또 기다리자 마를 바다 위에 돛을 접고선 기다리고 또 기다리자 거센 폭풍에 가라앉은 보석들이 맑게 빛날 때까지 젖은 땅 위에 발자국들을 남기며 보석들 볼 때까지 보석들이, 그 빛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2022. 12. 13.
오늘은 그랬어요 지하철에 자리가 없어서 오늘은 온종일 서서 갔어요 역에서 내릴 때까지 버스에도 자리가 없어서 오늘은 온종일 서서 갔어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와 같이 걷는 사람은 보이지가 않고 나와 같이 가는 사람도 보이지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안보이는 데도 갈 데도 없고 떠날 데도 없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할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는 나는 대체 뭘 해야 하나요 추워요 춥고 또 추워요 보일러를 켜도 나는 춥다고요 아파요 아프고 아파요 다른 사랑 해도 난 아프다고요 2022. 12. 12.
당신에게 당신의 노쇠함을 보면서도 당신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 나에게 당신은 어떤 말을 남길까 당신의 스러짐을 보면서도 당신의 사라짐을 알지 못한 나에게 당신은 어떤 것을 주려나 이제 비가 와도 더는 당신이 달려와 우산을 씌워주지 않겠지 이제 밤이 와도 더는 당신이 다가와 이불을 덮어주지 않겠지 비에 잔뜩 젖은 채로 당신을 떠올리며 나는 기침을 할거야 밤에 잔뜩 물든 채로 당신을 생각하며 나는 자지 못할 거야 혹시나 당신의 가슴에 후회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당신은 미련 없이 떠나가기를 바라 혹여나 당신의 마음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니 당신께선 뒤돌아보지 않기를 바라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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