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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소리

by 장순혁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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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소리를 녹음하려
작은 동자 스님 빼면은
아무도 없는 절에 가서
마루에 걸터앉아 녹음기를 돌렸지요

귀에 얹은 헤드폰에서는
사박사박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고

사박사박, 사박사박,
계속 사박사박에 몰입하다

문득 들려오는 저벅저벅 소리에
뭐가 녹음을 방해하는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대가 내게 오고 있었지요

시끄럽고 울리는 목소리로
내게 무엇을 하는 중이냐고 묻는
그대 때문에 나는 녹음을 끊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어요

눈 내리는 소리를 녹음하려고 한다, 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나를
그대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상쾌하게 웃으며
재미없는 눈 소리 녹음 대신
자기랑 이야기나 하자 그랬지요

눈 소리를 듣는 것보다
그대의 말소리를 듣는 것이
더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그대에게 나는 말해주었어야 했을까요

그대의 웃음소리가
내게 저벅저벅 울려와서

나는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눈 소리를 녹음하지 않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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