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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시인79

갈대가 모여 나무가 되었거늘 우리는 우리가 되어 우리가 아닌 이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우리의 존재를 알렸다 우리가 아닌 이들의 걱정어린 목소리를 질투라 여기며 우리는 우리를 더욱 굳게 조였다 홀로 있을 때에는 갈대여도 뭉치면 속이 꽉 찬 나무가 되리라 갈대인 우리가 모여 나무가 되리라 우리가 이 악물고 내뱉었던 우리들의 중심이 된 표어 거센 바람 불던 날 꺾이고 부서지고 나서야 나무의 허망함에 대해 알게 된 우리 밑동만 남은 채 휑하니 보이는 나이테를 가리지도 못하고 바람에 베여 아파하던 우리 차라리 갈대로 남을 것을, 하며 서로를 혐오하게 되어버린 한때 하나의 나무였던 우리들 2022. 5. 9.
봄에 꾸는 꿈 봄날에 잠이 들면 마음이 이상하게 아려와 한참을 뒤척이고 또 뒤척이다가 비로소 잠에 든다 그러나 그 잠도 얕은지라 나는 매일 꿈에서 너를 만나고 덜컹, 가슴이 내려앉은 채로 익숙한 천장 아래 눈을 뜬다 인연과 붉은 실은 끊긴 지 오래, 끊은 것인지 끊긴 것인지는 몰라도 나를 잃을 세상보다 너를 잃을 내가 더 아플 테니 나는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나를 잃은 세상보다 너를 잃은 내가 더 아프니 나는 세상을 떠나도 되겠지 모든 것은 죽기 위해 산다 너 또한 마찬가지로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다 당연한 것인데, 그런 당연한 것이 싫어 나는 너를 찾아 세상을 떠나려 한다 2022. 5. 8.
사치스러운 쉼 결국 다가오는 이별과 결국 서로 간의 작별을 기다리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서로를 너무 미워하는 걸까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이별과 결코 확언할 수 없는 작별이라도 바라는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는 걸까 아니면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걸까 같은 벽에 기댄 채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번갈아 가며 피우는 마지막 하나인 담배의 연기가 우리의 주위를 감싸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같은 곳에 자라나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번갈아 가며 쥐여준 마지막 하나인 손난로의 온기가 우리의 굳은 눈물을 녹게 하다가 온통 눈물바다로 주변을 적시게 한다 탓할 무언가를 찾으려 머리를 헤집었건만 탓할 것이라고는 나뿐이었네 원망할 누군가를 찾으려 머리를 뒤집어엎었건만 원망할 것이라고는 또 나뿐이었네 달라지고 변하고 저물면 우.. 2022. 5. 6.
정돈되지 않은 정원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입이 없어 울지 못한다 상처가 아파 감싸 쥐고 싶지만 손이 없어 감싸 쥐지 못한다 송골송골 땀방울 대신 핏방울이 맺힌 얼굴은 굳다가 녹다가를 반복했는지 굳은 피가 얕은 바람에도 툭툭 떨어진다 그렇기에 누구 혹은 무언가에게는 커다란 검은 봉투가 필요하다 모든 상처들과 아픔들을 넣어놓고 모든 눈물들과 핏방울을 쌓아놓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나는 나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비웃고 싶지만 입이 없어 웃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너답게 행동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신을 닦아주고 싶지만 손이 없어 감싸 쥐지 못한다 투명한 눈물과 빨간 피는 어떤 관계일까 빨간 눈물과 투명한 피라면 어떤 관계로 변할까 2022.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