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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시가 되는 걸 그대와의 길고도 진했던 만남이 짧고 옅은 시가 될 때 나는 그대에게 미안함을 느껴 그때, 그대와의 사랑이 마냥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대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 하지만 나를 떠난 것은 그대이니 그대가 이 정도는 감수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나를 버린 것도 그대이니 그대가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 줘도 괜찮은 거 아닐까 바알간 장미의 뭉침은 단순히 꽃다발로 말할 수 없어 그대도 알잖아 그 안에 담긴 나의 사랑을 단순히 사랑이라고 합칠 수 없어 그대도 모르지 않잖아 이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을 지새우다 다시 이 계절이 와도 이 계절은 다를 거야 때로는 욕조가 침대가 되어 영원히 그 안에 파묻힌 채 남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2022. 4. 16.
노란 자동차 노란색 자동차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자동차가 작아지고 또다시 작아지다가 어렸을 적 갖고 놀던 노란색 장난감 자동차로 변해버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며 행복해했었지 엄마가 분주히 준비하는 아침 식사 준비 소리와 함께 깨어나 비몽사몽 한 채로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과 세수를 했었지 아빠는 벌써 출근하시고 빈 부모님의 침대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었지 김치찌개 냄새가 부엌에서부터 흘러나올 때 엄마는 나를 부르시고 나는 교복을 반쯤 걸친 채 식탁 앞에 앉았지 창밖에는 아침 해가 떠오르네 그때와 똑같은 아침 해가 말이야 2022. 4. 15.
파란 원인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지기에 나의 사랑의 원인인 그대가 아니면 나의 사랑의 결과도 그대가 아닐 것이기에 불빛을 따라 나는 어리숙한 벌레들처럼 그대를 따라 걷는 어리숙한 나의 모습 같은 침대에 몸을 뉘어도 같은 곳에 있지 않은 우리이기에 바알갛게 물든 입술은 토해낸 피가 묻었기 때문이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이미 미래를 알아버렸기 때문이기에 값싼 하룻밤과 비싼 다음 날을 우리는 같은 가치로 지불한다 의미 없는 하루치 밤과 의미 넘치는 다음 아침을 우리는 다르지 않게 여긴다 2022. 4. 14.
마냥 웃기에는 괴로움은 외로운 공허에 기억을 더한 것이라 기억만 없다면 괴로움까지 치달을 일을 외로움에서 멈춰 세우는 거라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고 미소를 눈물과 교환하는 나는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네 긍정을 부정하고 아픔을 성실하게 지고 가는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까닭이 없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저 먼바다를 향해 저 높은 산을 향해 떠나가고 싶다만 떠나가고 싶다만은 이곳에 묶인 나는 저곳들을 향해 선망어린 시선만 던질 뿐 이곳에 뿌리내린 우리는 저곳들을 그저 바라보며 서로를 지우려 할 뿐 2022. 4. 13.